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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보다 과정, '빌드업 아이덴티티'의 부상

과정의 기록이 곧 경쟁력이 되는 대학생들의 새로운 자기서사

이가인 수습기자
- 4분 걸림 -
[사진1]▲ 대학생의 시험공부 브이로그/ 출처: 유튜브 Nunu 누누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최종 결과물보다 목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단 한 번의 성취보다 축적되는 경험과 시행착오의 가치를 중요하게 인식하는 흐름이 강해진 데 따른 변화다. 이에 성적 향상, 취업 성공, 공모전 수상 등 가시적인 결과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이른바 ‘빌드업 아이덴티티(build-up identity)’ 문화가 대학생 사회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빌드업 아이덴티티 문화의 핵심은 결과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개인의 성장 서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다. 이는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경쟁적인 환경 속에서 결과로만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기존 대학생 문화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 사례로는 스터디 브이로그, 학습 기록 콘텐츠, 성적 빌드업 기록 등이 있다. 대학생들은 시험 기간 공부 과정이나 하루 학습 루틴 등을 영상이나 글로 남기며, 목표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노력을 기록한다.

이러한 기록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유되며, 비슷한 목표를 가진 또래들과 공감과 응원을 나누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특히 기록 행위는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스스로 무언가를 수행하고 있다는 인식을 제공한다.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과정에서의 변화와 성장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성취 기준 역시 외부 평가나 단기적 결과보다는 개인의 변화와 지속성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빌드업 아이덴티티 문화는 학업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격증 준비 과정, 운동 기록, 독서 로그, 취미 활동 아카이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정 중심 기록이 이어진다. 대학생들은 자신이 축적한 시간과 노력을 하나의 서사로 구성하며, 완성되지 않았지만 성장 중인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일상을 온라인 플랫폼에 공유하는 데 익숙한 이들은 자신의 노력과 변화를 콘텐츠화하며, 결과보다 ‘지속하는 태도’ 자체를 하나의 가치로 인식한다.

또한 기록 중심 문화는 실패에 대한 인식 변화와도 연결된다. 과거에는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 또한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면, 최근에는 실패한 결과도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확산된다. 완벽한 성과만 드러내기보다 솔직한 과정을 공유하는 태도는 또래 집단 내 과도한 비교와 경쟁을 완화하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불확실한 미래와 장기화된 경쟁 환경 속 대학생들의 적응 방식으로 해석된다. 빌드업 아이덴티티 문화는 외부 기준으로 규정되던 성취의 의미를 개인의 축적 과정과 변화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다만 과정의 가치가 강조되는 만큼, 기록이 실제 성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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